- 본문: 이사야 11장
- 제목: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앗수르로 인해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는 사람이 있으리라고 말씀해주신 10장, 같은 상황에 주어진 또다른 환상.
1.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자손에 대한 예언적 묘사.
특이하게도 다윗의 자손으로가 아니라 이새의 자손으로 이야기하여 다윗을 연상하게 한다. 다윗과 같은 통치자의 이미지가 묘사되어 있다.
2절에 소개되는 주님의 영은 하나님이 주시는 정신적 요소로 보인다.
- 지혜와 총명의 영은 열왕기상 3장에 솔로몬에게 주신 선악을 분간하는 것을 의미한다.
- 모략과 권능의 영은 일이 가장 적절히 행해지게 하는 전략과 능력을 말한다.
-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는 영은 영문을 통해 보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이새의 자손에게 베풀어주시는 축복이 정신적인 것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 그 마음에 담긴 것이 그 사람을 만든다.
3-5절은 그(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싹)의 인격적인 반응을 보여준다.
하나님 경외, 공의, 정의, 성실을 갖고 있다. 그는 보이거나 들리는 대로만 반응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이 주신 대로만 적절히 반응한다.
☞ 성령을 아는 사람은 그 은사를 갈망한다. 성령의 은사대로 적절히 반응하지 못하고 잘 개발하지 못하여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즐기면서 사는가. 성경은 도덕적인 삶의 순종과 여호와 경외가 결부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행동의 변화가 있다. 순종의 변화.
2. 이새의 싹이 통치하는 세상의 모습
6-9절은 목가적인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 포식자와 먹이가 평화와 조화를 이루고 공존하는 모습은 적대의 종식, 평화의 완성을 의미한다.
- 풀을 먹는 사자의 모습. 포식자에게 나타나는 성질의 변화는 창조질서, 에덴의 본질적인 회복을 의미한다.
-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치는 모습은 창세기에 여자의 자손과 뱀의 자손의 대결, 그 끝에 여자의 자손이 승리하는 내용등 서로 대결하고 맞서는 모습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미지다. 곧 저주가 풀리는 모습이다. 저주가 끊기는 것은 곧 피조물인 뱀의 배후에 조종하던 사탄의 완전한 패배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이는 곧 세상 질서의 회복과 변형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피조세계 전체의 근본적인 관계가 깨진 상태가 회복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놀라운 세상의 회복과 변화가 곧 이새의 싹이 이뤄낼 일이다.
이사야 9장 1-7절에서는 세상의 변화가 먼저, 아기의 탄생이 나중에 기록된 부분도 있지만 오늘의 본문과 그 내용과 맥락은 다르지 않다.
3. 이스라엘 민족에게? 우리 모두에게!
앗수르의 위협 앞에 놓인 이스라엘 민족에 주어진 말씀 중에 나온 이야기이지만, 결국 피조세계 전반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상황과 대상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불의하고 악한 일이 많은지 조금만 돌아보라. 무법과 무질서가 가득하다. 짐승같은 세상이다. 예의와 도덕적 기준을 강조하긴 하지만 많은 부분 이론적으로만 국한될 때가 많다. 힘과 돈이 우위에 서고 나라간에, 개인, 가정안에도 약육강식이 작용한다. 개인과 가정의 삶이라고 다르지 않으니 상처와 상실이 깊다. 마르지 않는 눈물이 저마다의 가슴에 있다.
이 가운데 이사야11장 1-9절은 이 혼돈의 종결과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말한다.
새로운 질서가 재편되리라. 아픔과 눈물만으로 우리 삶이 종결되지 않으리니, 회복과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새의 싹, 메시아가 왔고 이기셨으며 그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
주님이 새로운 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으라.
그 역사는 모두의 것이 아니다. 이사야서 10장에서 볼 수 있듯이 주님을 경외하는 남은 자들의 역사이고 남은 자들이 끝까지 이뤄갈 승리의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