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룻기 1장
- 제목: 눈물 골짜기에... 다시 꽃 필 수 있을까?
I. 엘리멜렉의 이야기, 의미를 발견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현실
베들레헴에서 살던 엘리멜렉의 단란한 가정. 사사시대가 배경이다. 사사는 당시 통치자를 부르던 직책명이다. 안타깝게도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타락한 시대였다. 사람, 사회가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볼 수 있는 무법하고 비정한 시대에 엘리멜렉의 가정이 살았다.
그러한 문화 속에... 그것도 흉년이 들었다. 치명적인 위기가 계속되었다. 삶의 기반이 무너졌다. 생계를 넘어 생존이 위험에 처하자 그나마 나은 모압으로 간다.
외국인 노동자로 힘겹게 살았을 엘리멜렉과 그 아들들이 죽었다. 룻기는 그 죽음을 자세히 다루지 않지만 그 삶과 죽음이 얼마나 비참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된다. 남겨진 가족, 가장을 잃은 여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미래의 희망이 다 부서진 기분이었으리라.
II. 이어지는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손에 남겨진 것이 하나 없는 나오미의 상황. 이웃들이 그를 알아보지만 빈털터리에 슬픔과 비탄 가운데 있는 나오미의 모습에 놀란다. 나오미는 기쁨이라는 이름 뜻을 버리고자 한다. 쓰디쓴 고통만 남았으니 마라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 이러한 일을 당한 이가 있다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전망,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인생이 끝난 것만 같은 이 순간... 최악의 상황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때 함께 한 룻이 이삭을 주으러 간다. 생계의 위협을 겪는 힘없는 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다. 세속은 이들을 천하게 여기고 홀대했다. 그 일이라도 하려 했던 비굴한 입장이었으며 추수현장에 거친 남자들이 드글대는 상황에 룻이 들어가려 했다.
게다가 룻은 이방인. 개돼지 같은 대우를 받던 때였다. 그러나 이것밖에 할 수 없었다.
III.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하다.
그런데 룻이 간 밭이 "우연히" 보아스의 집이었고, 보아스는 "마침" 룻을 보게 된다. 그리고 룻의 삶과 그가 나오미를 선대한 일을 보고 들으며 선대하고 축복한다.
룻과 나오미의 이야기엣니 보아스는 나오미 가정의 기업 무를 자였음을 보여준다. 해당 집안의 재산을 사서 돌려주고 필요하다면 대를 잇게 도와야 한다. 명예 로우나 너무나 큰 대가가 든다. 그렇기에 율법적으로도 강요되지 않는다.
룻의 경우는 대를 잇도록 아내로 맞이하고 나오미까지 도와야 했으므로 복합적으로 도와야 하는 문제이므로 상당한 대가가 필요했다. 보아스보다 우선순위에 있던 친척도 결국은 거절하게 되는데 보아스는 기꺼이 선의로 그 일을 행한다.
그 결과는 너무나 놀라웠다. 엘리멜렉의 몫이 되는 재산을 돌려받아 나오미는 생계를 해결했을 것이다. 게다가 보아스와 룻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니 엘리멜렉, 말론의 계통이 이어졌다.
보아스도 상속자가 없었던 것 같은데 그 가정의 대도 이어진다. 재산, 명망, 인품, 신앙도 있었으나 후세가 없던 보아스의 큰 고민도 해결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오벳인데 이새의 아버지이자, 다윗의 할아버지이다. 나오미, 룻, 보아스의 가정이 왕가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고, 그것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왕 중의 왕 다윗의 계보가 시작된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통이 된다. 마태복음 1장에는 이로 인해 룻과 보아스의 이름이 실린다.
IV. 하나님 나라 역사에 연결되는 인생
룻기는 개인의 삶 속 극복과 회복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 일에 연결되는 영원한 의미를 남기는 인생이 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졌나?
전체적인 맥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셨음을 알 수 있다. 눈물과 탄식과 절망 끝에 새로운 희망과 생명의 싹을 틔우신다.
버거운 인생사. 끝이라고 생각되는 상황. 체념과 비관이 있는 삶. 그 때도 희망의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임을 기억하자. 마음에 간직하자.
눈물 골짜기에서도 감사와 노래와 찬양을 드리며 변화의 꽃이 피게 될 것이다. 게다가 마지막 날에 이뤄질 역사도 이와 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