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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 한스푼/묵상나눔

변한 다윗; 변하지 않는 사울

  • 본문: 사무엘상 26장
  • 제목: 변한 다윗; 변하지 않는 사울

I. 반복적인 사건 속에 다윗의 다른 반응

사무엘상 26장은 24장과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반복되고 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광야로 가고, 사울은 추격하지만 무방비 상태에 계속 놓인다. 누군가 다윗에게 사울을 죽일 기회라고 조언하나,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이지 않는다. 대신 다윗의 이러한 결단을 보여줄 증거를 취하고, 사울은 이 일을 두고 다윗을 축복하고 돌아간다.

매우 비슷한 이야기 구조. 그러나 약간의 차이가 있다.
26:8, 9절을 보자.

다윗은 측근에게 사울을 죽이자는 조언을 듣는다. 그런데 다윗은 이 일이 하나님이 금하시는 일이라고 거절하는 그 시간차가 있다. 26장에서 다윗은 즉각적으로 거부하고 그 이유를 덧붙인다. 그런데 24장에서는 많은 이들의 조언이 있었고 다윗은 먼저 사울의 옷자락을 먼저 자른다. 이후 양심의 가책을 일으켜 하나님의 뜻을 살핀다.

이전에 사울을 해할 기회에 머뭇거리고 시간이 걸렸던 다윗이 이후에는 거절의사가 확고해졌다. 24장에서 다윗이 머뭇거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머리로는 하나님 뜻을 알지만 마음으로는 되갚아주고 싶었을 수 있다. 왕의 옷을 자른 행위에 표면적으로는 죽일 수 있으나 그러지 않은 선택의 증거일 수 있으나, 이면에는 왕권을 쟁취하고자 하는 다윗의 충동적 욕구가 반영되었을 수 있다. 이러한 충동적 행동에 하나님은 마음의 찔림을 주셨다. 하나님의 계획을 그르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상황이지만 26장의 다윗은 변했다. 망설이지 않았다. 이 변화가 작은 것 같지만 내면의 변화는 아주 큰 것이다.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는 사람으로의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일할 수 있게 되었다.

II. 어떻게 변할 수 있었나?

사람이 변하는 것은 큰 사건이다. 쉽지 않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2사건 사이에는 25장 나발과 아비가일 사건이 있다. 보복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되갚아주고 싶은 충동적 욕구가 다윗 안에 있었는데 하나님은 이를 다뤄주셨다. 사울과 달리 기름부음 받은 자도 아닌 나발 앞에서 다윗은 충동을 일으켰고 이성이 마비되어 분노감에 따라 움직일 뻔했다. 그 앞을 아비가일이 가로막았다. 아비가일의 대응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 일깨워줬고 다윗은 듣는 귀가 있어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 다윗은 머지않아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격하게 된다.

이 가운데 다윗은 자기 내면의 불씨를 다시 보게 되었다. 갚아주고자 하는 욕망과 이를 가증히 여기시는, 그리고 친히 도우시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 이 덕분에 26장의 새로운 반응이 가능했다.

III. 기억해야 할 것들

1. 변해야 산다.

변한 다윗은 하나님께 쓰이게 되었으나, 변하지 않은 사울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사울은 24장에 울고 뉘우치나 그때뿐이었고 말뿐이었다. 그래서 26장에 잘못을 반복한다.

변화는 인생의 분기점이다. 세상의 통치자 하나님 손에 붙들리는 존재로의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그 하나님에 충돌하는 어리석은 존재로 남을 것인가.

2. 변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듣는 귀가 있을 때 가능하다. 스스로 돌아보라. 나를 변화시킨 하나님을 기억하고, 나의 변하지 않는 지점을 깊이 생각해보라. 내가 하나님 말씀에 충분히 노출되고 있는지 살펴라. 그리고 나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보라.

잠언은 여러가지 돌아보고 변화할 지점을 말씀하신다. 특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 그것이 모든 변화의 시작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변화할 지점을 이야기하고자 하시고, 나를 변화시켜 세워가길 원하신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자로 하나님은 나를 쓰기 원하신다. 이를 기억하고 나 자신을 치열하게 돌아보라.

하나님이 변화케 하시는 삶이 시작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