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출애굽기 2:23-3:10
- 제목: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오늘은 노동에 대하여 폴 스티븐스의 책을 참고하였다.
1. 노동의 의미에 대하여
세속적인 노동철학 : 고대 헬라철학에서부터 나오는 노동 개념은 고역이라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를 가능한 한 피해야 하는 것으로 노예(생명이 있는 수단적 존재)에게 부여된다. 근대 프로이트도 이와 같이 생각했다. 인간을 쾌락추구의 존재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 크게 다르게 노동을 바라본다.
창세기부터 일하시는 하나님이 그려지고,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위임받은 존재로 그려진다. 일을 통해 사람은 하나님의 동역자, 하나님과 교통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를 돌보는 존재로서 사람을 이야기한다. 인본주의는 사람을 위해 세상이 있고 사람 중심의 관점을 보여주나, 성경은 그와 다르다.
세속에서 보는 일의 가치는 점점 낮게 평가된다(예를 들어 파이어족, 힐링의 가치 증대).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의도와는 매우 다르다. 성경은 일의 가치를 하나님의 뜻과 마음까지도 연결 지어 생각한다. 철학과 뿌리가 필요하다. 일하지 않는 낙원은 성경적이지 않다. 물론, 일이라고 다 의미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해야만 한다.
2. 세상이 보는 노동의 가치와 성경의 관점은 다르다.
- 노동은 꼭 금전적 보상과 연결해선 안 된다. 가사, 육아, 봉사 등 금전적 보상으로 평가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일들이 있다.
- 육체노동은 결코 평가절하되어선 안 된다. 예수님도 목수, 석공의 직을 수행하셨다.
- 적절한 쉼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많은 일을 적은 사람에 시키는 것은 생명을 뺏는 일이다. 리듬과 균형, 질서를 부여하는 안식일. 하나님은 쉼과 일의 균형이 필요함을 본으로 보이신다.
3. 타락은 노동을 저주로 만들었다.
타락의 영향은 창세기 3장에 나타나는데 저주와 악의 권세가 인간세상에 들어왔는바 노동과 고역이 발생했다. 구조적 문제도 발생한다. 각종 노동의 어려움, 파괴적 영향력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그리신 노동의 가치를 고용주는 실현하여 근로자를 배려해야 하겠고, 생명을 지켜주고, 나아가 의미 있는 노동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며, 근로자는 성실히 임하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실현해야 한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와서 노동의 가치가 다시 회복될 때까지 국지적 전쟁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가운데 근로의 가치, 저주스러운 근로로부터 구원을 실현하는 삶을 지금 할 수 있는 부분부터 행하라.
4. 가정과 자녀에 대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가정도 회복될 수 있다. 골로새서는 특히 회복적 지침을 준다. 특히 아비들에게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는 지침. 교정과 훈계의 역할이 주어지는 아비들. 그러나 거기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자녀들을 감정적인 격분시킬 수 있다.
자녀를 부모의 종속적 존재로로 보지 말라.
애정과 사랑 어린 지도를 하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유업을 이룰 자로 생각하라. 그리고 성령을 좇아 행하라. 따라서 양육에 있어서도 내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행하지 말고 성령을 좇아 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