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이사야 40:1-11
- 제목: 노역의 때가 끝났고,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I. 이사야서의 구성과 반전
총 66장 중 1~39장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심판을 다룬다. 그 일환으로 바빌론에 의한 멸망과 포로 잡힘을 설명한다. 그러나 40장에서 대전환이 일어난다. 용서와 위로, 그리고 구원과 회복의 메시지.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포로로 살게 된지 50년 정도 된 시점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피눈물이 나는 상황 가운데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을 떠올렸을 것이다. 마음 한복판에서 출애굽이 떠올랐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고 포기하셨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죄를 알기에, 자신에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깨닫게 된다. 이들의 상황을 측은히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들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도저히 간과할 수가 없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다름 아닌 자기 책임임을 알게 될 때,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심판이 내려질 때 사람은 처지를 비관하고 체념하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 주어지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
그 근거는 용서와 속죄였다. 하나님의 속죄는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는 성격을 갖는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의 메시지에 영문을 몰랐을 것이다. 누가 어떻게 죄가 해결될 수 있는가. 죄의 삯은 죽음, 곧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자 심판인데 어떻게 이러한 운명의 전환이 일어나는가?
곧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은혜는 곧 갚을 길 없는 뜻밖의 선물이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이 결단하신 사랑이다.
3절 이하는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한다. 광야와 사막이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놓여있었다. 죄의 문제로 인해 관계가 깨지고 이로 인해 백성이 하나님께 다가갈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하여 백성에게 찾아오신다. 하나님의 진로는 그 어떤 장애도 막을 수 없다.
II.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변화
6, 7절은 절대강자인 바빌론도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지를 상징적으로 설명한다. 이스라엘을 체념하게 할 만큼 그들을 억압하는 세상의 강력하고 두려운 존재.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은 다르다. 한 없이 가벼운 풀과 꽃 같다.
이스라엘도 역시 풀에 지나지 않는다. 덧 없고 약하며 유한하다. 그러나 8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다고 이야기한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수단이 되는 말씀. 풀과 같은 인생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연결된다면 정체성에 변화가 있으리라.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 그 백성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변화시킨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관점이 나의 관점이 된다.
12절 이하는 특히 우주와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그린다. 그런데 15절은 그러한 하나님께서 우주와 세상의 역사, 세상 나라와 권력자들까지 다스리시고 주관하실 수 있음을 또한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모든 역사를 시작하시고 과정을 이끄시고 끝맺으실 수 있는 분이다. 누가 하나님을 막을 수 있으랴.
세상에 간섭하시는 하나님. 당시 바빌론의 역사와 통치를 겪고 있는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믿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참의 시간이 지난 우리는 안다. 실제로 바빌론은 역사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옛 국가일 뿐이고, 하나님을 따르는 그 백성들에게 믿음의 여정은 그러한 세상 권력의 흥망성쇠와 상관없이 이어지고 있다.
28~31절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에는 한이 없으니 하나님의 일하심은, 그 자비는 그 분을 앙망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이뤄질 것이다.
III. 결어
우리가 기대하는 시간과 다를 수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며 기대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때에 반드시 임한다. 눈앞에 놓인 세상의 현상이 아니라 당장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 이면에 분명히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 되신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분에 연결된 삶을 사모하라. 이로써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삶이, 체념한 상황까지 반전시키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