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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 한스푼/묵상나눔

아비가일, 총명의 사람

  • 본문: 사무엘상 25:1-42
  • 제목: 아비가일, 총명의 사람 

I. 서언

잠언의 원론적 교훈을 묵상할 때 그 원리를 잘 담은 성경의 다른 본문을 함께 묵상하는 것이 좋다. 오늘의 본문도 잠언의 교훈과 연결되는 점이 많다.

II. 어려운 상황 가운데 다윗이 살아가는 선한 방식과, 이를 악으로 갚는 나발의 말

정식 고용도 되지 않았는데 다윗은 600여 명의 식솔을 지키기 위해 도적으로부터 나발의 가족과 재산을 지켰다. 어쩌면 오해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사울 왕의 핍박을 받던 다윗이 식솔을 지키기 위해 택한 고육지책이었다.

다윗은 추수 시기에 이르러 지난 수고를 기억해달라며 나발에게 지원을 요구했다. 그러자 나발은 모욕적 표현으로 다윗을 무시했다. 다윗의 마음이 무너졌을 것이다. 이러한 모욕과 조롱은 나발이 선을 악으로 갚는 성격을 보여준다. 사실 다윗이 나발을 지키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나발은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는 다윗을 심히 무시한다.

게다가 나발은 다윗을 주인을 억지로 떠난 종으로 묘사했는데 이것은 실체를 왜곡하는 말이다. 내 말이 사안과 사람에 대해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이런 말은 특정인을 주변으로부터 소외되게 만들어 상처를 주는데,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 말한 사람에게 책임이 돌아온다.

잠언에서는 악인의 말이 갖는 특징을 묘사하는데 이처럼 타인의 인격을 무시하거나, 자기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여 주변에 퍼트리는 문제를 반복적으로 경계한다.

III. 다윗의 정도를 지나친 보복 의사와 이에 대하여 아비가일을 통한 하나님의 지혜로운 제지

다윗은 이러한 나발에 보복하려 했다. 이는 어느정도 정당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 문제가 있었다.

1. 과도한 보복방식이었다.
2. 이성을 잃고 하나님에 대한 고려 없는 반응이었다.
3. 하나님께 있는 보복과 심판에 대한 월권이었다.
4. 유다지파에 속한 나발을 죽였다면 다윗은 왕이 되지 못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렸을 것이다.

다윗이 왜 이렇게 했을까?
-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은 성급함!
악인의 행동에 따른 분노와 당혹감은 나의 이성을 마비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질 것이라는 진리를 신뢰하고 기억해야 한다.

여기에 대해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나선다.
아비가일은 공정한 눈을 가지고 남편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 이는 다윗의 감정을 공감해주고 정당화해주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은 다윗의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아비가일은 살아계신 공정하신 하나님을 환기시켰다. 하나님께 보복이 담겨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그 백성을 지키신다는 진리도 정확히 지적하였다. 거기에 29절에서 아비가일은 돌팔매 던지듯 원수의 심판을 다루시는 하나님을 설명했다. 다윗은 골리앗 사건을 기억했을 것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다시 생각했을 것이다. 거기에다 아비가일은 다윗이 사사로운 싸움을 하는 불량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을 붙잡아 하나님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

다윗에 대한 충언으로 오히려 다윗을 가로막은 아비가일의 지혜.

다윗은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지혜로운 충고를 듣는 귀도 지혜다!

IV. 그 밖에 나발 사건에서 보여주는 지혜에 대한 교훈들

- 술에 취한 나발은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몰랐다가, 술에 깨서 아비가일에 상황을 전해 들어 심적 충격을 받아 죽기까지 한다. 이를 통해 나발이 다윗에 한 처음 말이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술에 관대한 세상. 그 세속 문화를 경계해야 한다. 술이 얼마나 우리 이성과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이것이 생명을 앗아갈 위험까지 일으키는지 생각하라.

- 이 이야기가 사무엘의 죽음에서 시작한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완수한 사무엘. 세상이 주는 가치를 붙들기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을 붙잡고 승리하라.

사무엘의 사명 완수 이후 데려가신 하나님, 다윗을 지켜 새로운 사명자의 삶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비가일을 보내 지혜로운 대처가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 세상 속에 나 홀로 사는 것 같지만 이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나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고려하며 지혜의 삶을 살길 사모하고 애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