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이사야 8:5-15
- 제목: 가장 귀한 하나님; 쓸데없는 하나님
Ⅰ. 5-8a
하나님을 신뢰하기를 바라시며, 만일 믿음이 없다면, 보고 믿을 수 있는 징조를 구하라는 하나님의 파격적인 제안(7:11)을 거절하고, 대신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아하스의 “선택”에 대해,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결과는, 당장 눈앞의 위협이 되었던 아람-이스라엘 연합군을 앗수르가 황폐케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앗수르의 군대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유다에까지 밀고 들어온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유다는 치명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고, 유다 역사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는 또한 다윗 가문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아하스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신 현실 세계의 강자인-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앗수르를 선택했다. 그에게 하나님은 종교 영역에 한정된 대상에 불과했다. 현실 세계는 전혀 다른 차원이고, 따라서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여기에 몇 가지 교훈이 있다.
인생/운명이 걸리는 선택이 있다. 그러므로 선택에 신중해야 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은 실질적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도 좋긴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8a 는 하나님을 배제한 실질적 조치가 처음에는 효과적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국에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을 내다보고 있다.
Ⅱ. 8b-10
충격적인 내용이 언급돼 있다. 취약한 유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강력했더 웃시야 왕이 죽은 뒤로 유다의 국력은 쇠약해졌다. 그런 유다 주위에 아람-이스라엘 연합군이, 또 그 바로 너머엔 제국 앗수르가 진을 치고 있다. 앗수르는 왕이 직접 참전하고 있고, 최소 20만 명의 정예군을 이끌고 왔다. 그 군대들은 전략을 함께 짜고, 최상의 준비 태세를 거쳐 드디어 D-Day 를 맞이하게 되었다. 출격 나팔에 맞춰 다같이 함성을 지르니 땅이 울리고, 하늘도 흔들리는 것 같다. 이제 유다는 어떻게 되는가?
이사야는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끝내 패망하리라.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아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이사야는, 그럴 수 있다고,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말한다.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고 알려준다.
여기에 몇 가지 교훈이 있다.
어떤 프로젝트에 많은 준비와 노력, 네트웍, 전략/계획을 가진다하더라도 거기에 하나님이 빠져 있거나 또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반한다면, 그 일은 성취되지 못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원인에 의해서, 충격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20만 명의 앗수르 군대가 의미하는 바는... 최악의 상황이다. 어떤 상황에 처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에겐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절대 변수이시기 때문이다. 그가 없다면, 마땅히 될 일도 되지 않을 것이고, 반면 그가 함께 하신다면, 절대 되지 않을 일... 그 일이 된다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일도 되기 마련이다. → 하나님은 살아계신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그 앞에 인간의 상식, 예측, 노력, 주장은 모두 길을 잃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다. 이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오늘 우리 시대는 예수를 통해 이루어진다. 즉, 예수님을 만나면 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사도들이 전해주는 예수 이야기, 예수 사건,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이야기를 자세히 살피면 된다. 그렇게 하면, 누구나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함이 되는 것이다. → 예수 이야기를 읽고, 묵상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를 바랍니다.
Ⅲ. 11-14a
12절은 이사야가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며”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보면, ‘반역자’에 관한 내용이다. 이는 정치적 격변 상황 또는 전쟁 소문과 같은 것이다. 이런 소식들은 실로 충격적인 것들이고, 듣는 이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쿠데타, 외환위기를 경험한 우리들은... 정치적 격변이나 전쟁 소문, 그로 인한 공포를 이론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이다. 그에 따르는 여파는 우리의 경제/안보 지형을 바꿀 것이고, 우리의 생계/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며”라고 도전하고 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사야는 14a 에서 “그가(여호와께서) 성소(거룩한 처소, 즉 피난처)가 되시리라”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에 몇 가지 교훈이 있다.
격변과 같은 충격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는 안전이 있다.
이러한 안전을 위한 조건이 13절에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는 것이다. 즉,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것이다.
여호와 경외는... 그가 얼마나 거룩한 분이시며, 창조자이시며, 세상을 다스리는 분이시며, 그렇기에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유일한 분이심을 아는데서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앎은 (염원이나 의지보다도) 읽기-READ THE BIBLE-를 통해 생겨난다. 성경 읽기는 이처럼 중요하다. 기독교는 책의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 놓치게 되면, 그 신앙은 빈약하거나 문제가 된다. → 기독교의 성격에 맞는 신앙생활을 하는 새봄이 되도록 함께 노력해요.
경외심은 표현되기 마련이다. 수많은 항목들이 있겠지만, 그 중 예배와 경건한 삶은 양대 카테고리가 된다. 예배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것이다. 다른 것을 변경할지언정 예배를 흔들지 않는다.
이처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그가 (친히) 성소가” 되실 것이다. 어떤 상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는 안전할 것이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Ⅳ. 14b
성소가 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면, 걸림돌이 되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실 세계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은 긴 흐름에서 보면 순탄치 않을 것이고, 뒤틀린다.
성소가 되시는 하나님 아니면 걸림돌이 되시는 하나님. 이 두 경우 외에는 없다. 하나님의 존재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불교 신자, 무신론자도 모두 예외가 없다.
어떤 하나님을 경험하느냐는 각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다.
→ 하나님을 알 만한 기회가 올 때,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붙잡을 필요가 있다.
→ 선택의 순간, 위기와 두려움의 순간에 눈에 보이는 세상적 방법이 아니라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과 같은 하나님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