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룻기 1장
- 제목: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 시니라
I. 비극과 절망의 순간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들이닥치다.
룻1:1 - 유다 지역의 자연재해, 1차 산업 당시 자연재해는 생존의 문제였다. 이에 상당한 거리를 이주하여 모압에 피난한 엘리멜렉의 가족. 그리고 이 문제가 상당한 시간 지속되었고 경제가 초토화된 상태였다. 거기에 아버지와 아들들이 모두 사망한 상황.
- 예상, 계산하지 못한 크나큰 생존의 위협 앞에서 익숙한 곳을 떠나는 결정을 하게 된 한 가정.
- 그러나 가장과 아들들의 잇따른 죽음은 삶의 기반이 완전히 무너지는 일이었다. 죽음의 이유는 명시되지 않았으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미래의 희망이 무너지고, 대가 끊기는 큰 문제가 발생했다. 나오미와 그 며느리들에게 얼마나 큰 슬픔이었겠는가... 상처와 트라우마뿐이고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처지가 되었다.
II.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의 선한 선택, 헤세드
그러나 나오미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젊은 두 며느리들. 이들은 나오미의 생계에 도움이 될 수단일 수도 있었는데 나오미는 오히려 이들이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모든 기반이 무너진 사람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요소를 포기하는 모습은 사실 쉬운 것이 아니다.
어떻게 나오미는 그렇게 결단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8, 9절이 힌트가 될 수 있다. 나오미는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아직 굳건히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비관적인 상황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여전히 하나님의 계획이 살아있고,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다는 믿음, 내가 다 이해 못해도 하나님은 선한 길을 이끄신다는 믿음이 나오미에게 있었기에 자신의 처지보다도 며느리의 상황을 고려해서 선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며느리 룻은 이 가운데 마찬가지로 나오미를 선대한다. 자신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유리한 선택이 아니라 시어머니의 입장을 고려하고 의지한 곳이 대해준다.
선대 하는 마음, 헤세드.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하나님의 백성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자연스럽게 깃들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와 룻.
그들은 다른 이의 밭에서 남은 이삭을 줍는 것으로 생계를 가까스로 이겨낸다. 그 밭의 주인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친족이었고,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따라서 큰 부담을 짊어지며 기업 무를 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보아스 또한 혼돈의 시대 가운데 이들을 선대 하였고 이로써 역경을 극복한다.
III.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신실한 삶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 가운데 쓰이다.
그리고 보아스와 룻 사이에 태어난 오벳에게서 다윗이 태어나고, 그 계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셨다. 하나님의 주권적 일하심은 혼돈과 비극의 세계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성품을 본받아 선한 선택을 한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 가운데 씨앗이 심겼고 그 끝에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될 수 있었다.
실낙원. 우리가 사는 세계를 나타내는 가장 적절한 단어일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삶이 흔들리고 꺾이게 하는 세상의 논리와 악한 영향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지라도, 이 가운데 선한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신뢰하여 작은 반응을 하는 삶을 살아내라. 이것이 실낙원을 회복하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신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결국 이뤄진다.
하나님의 주권적 일하심에 우리 신실한 삶의 선택들, 우리가 하나님을 고려하는 삶이 쓰인다.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신다. 우리 신실한 삶,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외하는 삶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쓰이고 결국 영원한 주님의 역사에 연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