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눅6:27~36
- 제목 :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
20~23절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에게 오는 불의한 대우가 장기적으로는 복이 있다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불의하게 대우하는 자들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본문이다.
1. 사랑하라, 선대하라, 축복하라, 기도하라.
결국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는 것이다.
보복하지 말라는 것보다 더 나아간 적극적인 도전이다. 악을 경험하면 분노와 적개심이 느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저와 같은 지침을 주시는가.
원수를 대하는 자연스러운 또는 상식적인 반응
- 방어
- 되갚음, 보복
- 심판
그런데 이 중 보복과 심판은 그 속성 자체가 인간의 손에 달리면 결국 악에 자리를 내어주는 문제로 전이, 확대될 위험이 크고 또 다른 보복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러한 방법으로는 궁국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한계가 있다.
* 턱을 치는 자에게 저쪽 턱도 내밀어라.
뺨으로 번역된 것은 원어는 턱에 가깝다. 모욕을 주려는 정도가 아니라 급소를 치려는 행동이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정말 생명의 위협까지 준다는 의미가 전제된다. 이 말씀은 글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오히려 폭력과 압박을 더 불러일으켜 복잡하게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또한 역시 보복하지 말라는 의미다.
요한복음 18:22, 23절이 그 본을 보이신 말씀이다.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간디도 영국의 식민지배와 인권침해를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했다. 속수무책의 상당한 희생이 뒤따랐지만 역사는 결국 인도의 승리였다. 이러한 방식이 공격자들의 마음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20세기에 이러한 일이 많았다.
물론, 희생이 따랐지만 보복이 이뤄낼 수 없는 성과가 이뤄졌다.
2. 너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여라. 새로운 황금률
당시의 가르침은 너희가 받기 싫은 대우는 남에게도 하지 말라, 남들이 너에게 하듯 너도 남에게 하라는 것. 그러나 예수님은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지침을 주신다.
세상은 상호성을 가진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방식은 상호성에 기대지 않는, 자비와 은혜이다. 35절, 이러한 방식을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을 보이게 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사랑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아버지 하나님의 속성, 사랑의 은혜와 자비를 가져야 한다. 이는 사실 세상에 없는 강력한 힘이다.
3. 정직하고 진정성 있게 성실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경험하여야 가능하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경험해야 그 성격이 내 안에 주어진다. 그렇기에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상적인 접근으로는 도달하기 어렵다.
신앙은
정직하고 진정해야 하며 성실해야 한다.
이러한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본 받아서 악을 닮지 않는 진정한 승리를 맛보고 나아가 악을 변화시키는 존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