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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경 한스푼/묵상나눔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 본문: 마가복음 15:33-16:8
  • 제목: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42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46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16장>

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부활사건은 진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다.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로마서 1장 4절에서 부활은 예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설명한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 1:4)

 하나님의 아들. 그렇다면 다시 우리의 시선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으로 옮겨져야 한다.


1. 사람의 죄, 그 삯인 죽음.

A. 죄는 무엇인가, 실존하는 구체적 개념인가. 

현대사회는 죄의 개념을 얼추 이해는 하지만 crime으로 연결하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괜찮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는 사람이 지은 법의 테두리가 기준이 된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엄중한 도덕률이 있다고 설명하며 이를 어기는 것 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을 죄라고 설명한다.

세상의 죄는 조금만 고개를 들어 보면 보편적이고 팽배한 일이다. 법이 정한 죄뿐 아니라 불륜, 거짓말, 생명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세태 등등.. 누구든 상황과 조건이 갖춰지면 죄악을 저지를 수 있으며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죄의 씨앗을 갖고 산다. 그런데 하나님이 지은 인간은 도덕과 양심을 갖고 살며 이러한 자신과 타인의 죄를 목격할 때 불편감을 느낀다.

B. 죄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심각한 문제다.

죄의 뿌리에는 사탄, 공중에 권세잡은 자가 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거역, 하나님으로부터 자존하려는 성격이 관련된다. 죄는 그 속성상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치고 나아가 이웃과의 관계도 해친다. 심각한 것이다.


2. 죄에 반대되는 하나님의 속성, 거룩과 사랑

하나님을 직접 본 이사야, 베드로 등은 자신의 불결함을 깨닫고 망했다고 표현했고 두려움을 느꼈다. 하나님의 무오하심, 거룩하심, 나아가 한 없는 능력을 볼 때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우리의 죄성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모세도 하나님의 실존 앞에 신을 벗어야 했고 언약궤도 사람과 사이에는 간격이 있어야 했다.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고 사람에게 주어진 유일한 결론은 심판뿐인데, 하나님의 또다른 모순적인 속성이 운명의 변화를 일으켰다. 바로 사랑.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과 순종은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을 동시에 보여준다. 죄에 대한 완전하고 엄중한 심판이자 곧 사람의 운명이 바뀌고 거룩의 회복과 사랑의 구원이었다.


3. 결론

큰 희생, 모순된 자리에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를 묵상하고, 감사하자. 죄 용서는 자동적으로 되지 않는다. 예수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 이것을 믿는 자 에게 용서가 있다. 떡을 받아 먹고 포도주를 받아 마시는 자에게 예수 십자가 용서의 효력이 있고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이 놀라운 사건을 나의 개인적 사건으로 받아들여라. 

십자가 앞에 서서 눈을 들어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바라보라. 내 죄를 알고 그 심각성을 깨닫게 되는, 양심을 흔들어 깨우는 순간을 놓치지 말라. 바로 그 순간이 은혜의 기회임을 깨닫고 하던 일을 멈추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 순간에 거룩하시면서도 죄인된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비참하게 죽으셨지만 영광스런 모습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맞이하라.

부활의 포인트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이다. 이 사건은 개념이나 이론이 아닌 역사적 사건이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그는 왜 십자가에 달려있는가? 왜 비참하게 버림 당하였는가? 질문을 던져보라. 우리 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처럼 십자가에 예수와 함께 내 과거를 못 박고 내 삶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사실, 운명의 갈림길이 열리리라.